한국의 전통음식에 담긴 국민성과 현대인의 의식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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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전통음식에 담긴 국민성과 현대인의 의식변화 우리 한국의 전통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한민족이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해 온 가치관과 기후 환경,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적 결정체입니다. 단순히 영양소를 보충하거나 허기를 채우는 생리적 수단을 넘어,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계절의 변화와 인체의 리듬을 조율하며 삶의 온기를 나누어 온 선조들의 깊은 생태적 지혜가 담긴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 향토 기록과 전통 식문화를 깊이 고찰해 보면, 우리 조상들은 자연이 내어준 제철 재료의 성질을 완벽히 이해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약식동원(藥食同源)의 가치를 일상 속에서 실현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음식학 및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한국 전통음식에 투영된 국민성의 핵심 특징 4가지를 분석하고, 현대인의 식탁에서 전통 음식이 어떻게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재해석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한국 전통음식에 투영된 한민족의 4가지 국민성 1. 조화와 융합의 미학: '비빔'과 '쌈' 문화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 음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성질의 재료를 한데 모아 완전히 새로운 맛과 영양학적 균형을 창조하는 융합성에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비빔밥과 쌈 문화입니다. 각기 다른 색과 식감, 맛을 지닌 산나물과 고기, 고추장과 참기름 같은 양념이 한 그릇 안에서 어우러지는 비빔밥은 재료 하나하나의 개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전체의 조화를 이끌어냅니다. 쌈 문화 역시 밥과 쌈장, 마늘, 고기 등을 신선한 채소 한 장에 감싸 한입에 섭취하는 독창적인 식사 방식입니다. 이는 개별성을 인정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와 공존을 추구하는 한민족의 상생(相生) 정신과 맞닿아 있으며, 다채로운 요소들이 섞여 하나의 완성된 공동체를 이루는 한국 특유의 사회적 역동성을 잘 보여줍니다. 2. . 기다림과 정성의 가치: 발효 과학의...

내가 겪은 기록 - 제1편 한화 230억원 을 36개월만에 다까먹었다

 

 제1편 한 기술자의 꿈과 마주한 냉혹한 현실 

오늘은 필자인 구마고의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우리는 흔히 열심히 살면 빛이 볼 것이라 믿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개척하며 기술을 개발하면 언젠가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이 따를 것이라 순수하게 믿으며 살아온 세대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2021년 초, 저는 신재생 에너지 관련 두 개의 회사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연 매출 60억 원, 과 약 30억원을 하는 두개 회사를 운영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국내 및 세계 특허, 940점 대의 개인 신용 등급, 그리고 통장에 찍혀 있던 108억 원의 현금. 무엇보다 제 가슴을 뛰게 한 것은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 태양광 시장과 풍력 시장에 정점에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1.세계를 바꿀 혁신적인 꿈, 그리고 새만금의 첫삽

당시 제가 개발한 기술은 태양광 발전의 고질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혁신적인 기술이었습니다.

인버터 와 모듈을 일체화해 발전 효율을 20~30% 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미국·유럽 특허 까지 획득한  기술 입니다.




이 기술 하나면 대한민국이 태양광 부문 세계 1위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또한 풍력 시장에서의 대한민국은 이름도 내밀수 없는 기술을 가졌지만 저희 소형 풍력 기술은 효율 면과 기술적인 면 에서는 그 누구도 번접 할 수 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꿈을 안고 새만금 지역 오식도동 에 대지 12,000평, 건평 6,000평 규모의 2021년 5월 공장 착공에 들어갔습니다.

기술 보증 기금의 50억 원 보증서 승인, 111억 원 규모의 정부 무상 지원금 확정, 그리고 주거래 은행이었던 하나 은행 의정부 역 지점의 160억 원 건축 자금 약속까지. 내 통장에 108억 원의 현금이 있었기에 모든 것이 순조로울 줄 알았습니다.

공장이 완공되면 800명을 고용하고 연간 6,00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지역과 국가에 이바지하겠다는 꿈만 가득했습니다. 미국 등 해외와의 수백억 원대 사전 공급 계약도 이미 체결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희망의 탑은, 착공과 동시에 정부의 무관심과 은행의 차가운 계산기 두드리기 앞에 속절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2. 우리가 믿었던 ‘정부 지원’과 ‘은행’의 덫

첫 번째 비극은 은행의 모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은행 의정부역 지점은 160억 원의 건축 자금을 약속하며 기술 보증보험 50억원 보증서를 받으면서  41억 원만 대출을 받아가라고 요구했습니다. 이후 제가 알아본 바 많은 금융인 들은 이해가 되지 않은 조건이라고 들 합니다.

이유인 즉  건축 자금과 대출금을 함께 받으면 대출금 한도 가 넘는 다는 이유 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되는 부분 입니다.

그리고 기술 보증 보험 발행 보증서 50억 원 짜리를 하나 은행은  41억만 대출 해주고 , 160억 원 의 대출의 조건으로 41억 대출 바로 다음 달부터 곧바로 원금과 이자 상환이 시작되어 근 1년 6개월 이상을 연체 없이 납입하여 원금을 약 36억원 까지 줄였습니다.

그러나 회사도 정부의 정책 변화로 매출이 없고 미국 과 해외 그리고 국내 수출 업자 들과의 약속 때문에 공사를 계속 진행하다 보니 , 이자와 원금 상환은 계속되어지고 있어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은행은 결국 약속했던 추가 대출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허울뿐인 정부 지원금이었습니다.

저명한 전문가와 20명의 박사 급 심사 위원 앞에서 1시간 넘게 기술의 우수성을 검증 받고 치열하게 따낸 약 111억 원의 국가 지원금. 하지만 실제로 손에 쥔 것은 절망 뿐이었습니다.

이 돈을 받기 위해서는 신용이 우선 되어야 한다 는 데,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사실상 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시작 한 일이라 , 서울 보증 보험에서 보증서를 끊어야 했는데, 연 매출 60억 원의 중소기업에 서울 보증 신용 발급은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가진 현금 20억 원을 담보로 잡히고, 3억 원이라는 막대한 수수료를 치르고 서야 1차로 35억 원을 받았지만,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고작 12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에게는 그림에 떡인 제도 일 뿐이었고 이 제도는 멀쩡한 기업을 죽이는 제도 였슴니다.

더군다나 신용이 부족한 중소기업들 에게는 두 번 울리는 허울 뿐 인 제도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중 정권이 바뀌면서 신재생 에너지 정책의 기조마저 뒤바뀌었습니다.

하나은행 은 지점장 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또는 본사 승인이 안 난다는 이유로 기존의 160억 원 건축 자금 대출의 약속은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했고, 매달 기보 대출금 41억 의 원금과 이자를 칼같이 요구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하루도 밀리지 않고 5억 원의 원금을 상환했음에도 은행은 도외시했습니다.

또한 2차 정부 지원금 50억 원을 받기 위해선 서울 보증으로 부터 또다시 30억 원의 현금을 은행에 담보로 잡힐 것을 요구 했으나, 이미 공장 건축비와 장비 대금 ,그리고 수출하기 위한 사전 준비(국제 인증 준비)로 고용해서 일하고 있던 직원(약 40명)들 의 인건비로 자금이 소진된 저로서는 손을 쓸 도리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공장의 건축 전체 공정률이 92 % 완공  상태라 은행과 정부에 기대를 많이 했으나 역시 그들은 우리 기업인들 에게는 허울 뿐인 존재와 이해 관계인 일 뿐이었습니다.

3. 모든 것을 잃고, 홀로 남겨진 찬바람 속에서

결국 정권 변화로 영업은 막히고, 해외 수주는  물건을 만들지 못해 인증(유럽 및 미국인증) 비용과 인건비만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한도 1억 8천만 원의 개인 카드로 직원 월급을 주고, 지인들에게 빌린 40억 원으로 버텨보았지만 2024년 말,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딱 3년 만에 230억 원이라는 현금이 공중에 사라져 버렸슴니다.

지금 전북 군산 오식도 동(새만금)1056 번지 에 가보시면 멋있는 공장과 사무 동 총 5동과 함께 소형 풍력이 쓸쓸히 우뚝 서 있는 곳이 바로 제가 온 힘을 쏟아부었던 그 공장입니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당시 직원들이 올렸던 소형 풍력과 태양광 특허 모듈, 그리고 공장의 전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2억원 을 보증서 발행 해준 서울 보증은 경매를 집어 넣어 경매가 진행 중이고,

공장에 유치권이 걸린 것도 모자라, 20억 원을 들여 설치한 전기실 장비와 공장 내 전선까지 전부 도난 당하고 공장에 제조 해논 풍력 발전기 용 제네레이터 까지 도난 당한 현실이 참 담 할 뿐 입니다.


 피와 땀이 서린 장비들이 뜯겨 나가는 것을 보며 군산 경찰에 발견 즉시 곧바로 신고했지만, 담당 수사관은 마지못해 접수만 해둘 뿐 몇 달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고 행방도 알수 없습니다.

경찰들은  "CCTV에 찾을 수가 없다", "시간이 너무 오래 되 서 잡기 어렵다"며 핑계만 대는 전북 군산 경찰의 그 무성의하고 냉담한 태도와 신고 이후에도 도난 당한 물건 조차 도 찾을 생각을 안하고 핑계만 대는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관의 행태는, 차가운 공장 바닥 보다  제 마음에 더 깊은 대못을 박았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잃은 필자인 피해자에게 국가와 공권력마저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밀려오는 무력감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습니다.

지금 군산 오식도 동에 가보시면 가로 220미터 세로 170미터 짜리 대지 12,000평에 건물 1동이 폭 35미터 길이 97미터 공장 4동과 바닥 400평 씩 4층인 사무 동 총 건물 평 수  약 6,000평 건물과 소형 풍력이 쓸쓸히 우뚝 서 있는 곳이 바로 제가 온 힘을 쏟아부었던 그 새 만금 공장입니다.

4. 가장 아픈 계절, 그리고 독자님들께 묻습니다

수많은 빚과 세무서의 압박, 카드 사의 독촉, 그리고 지인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숨이 조여 오는 이 시기, 지난해 12월경 저는 후두 암과 갑상선 암 수술을 고려대 안암 병원에서 받았습니다.

지금은 열심히 한때 잡지사(헬쓰 투데이)발행인 이었던 실력을 기본 삼아 글도 쓰면서 완치의 그날 까지 열심히 회복 중 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해야 할 기술자의 말년에, 몸과 마음 모두 최악의 악 조건 속에서 하루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국가와 민중에 헌신하면 복이 온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졌기에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열심히 살아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또한 내가 가진 이 기술을 사양 시키기엔 너무나 아까워서 열심히 재기 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뼈저리게 깨달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과 은행과 경찰 절대 믿지 마십시오."

독자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바닥이 벼랑 끝이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지지할 손잡이 하나 남아 있지 않다면, 그곳에서 버티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특허 증과 도면, 그리고 군산의 찬바람 속에 덩그러니 멈춰 선 공장. 그곳에 남겨진 것은 쇳 덩이가 아니라 한 인간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비록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세상이 등을 돌린 것 같은 침묵 속에 갇혀 있을지라도, 저는 믿고 싶습니다.

이 거칠고 차가운 시련의 터널 끝에서, 땀방울 흘려가며 기술을 일구던 그 뜨거웠던 심장 만큼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실패는 인생의 끝이 아니라, 가장 진솔한 나 자신을 마주하는 또 다른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도 어디선가 저처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홀로 눈물 삼키고 계실 또 다른 ‘기술자 ’들과 ‘가장’ 들에게, 이 서툰 기록이 작은 온기와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아남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복수이자 희망입니다.

이런 막막한 절망의 끝에서, 저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이 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따뜻한 조언 한마디를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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